현대판 다메섹 도상 체험: 산토쉬 목사의 이야기

네팔의 힌두교 사제 가문 출신으로 한때 기독교인을 싫어했던 한 남자가 자신의 삶을 그리스도께 온전히 내어드렸을 뿐 아니라, 이제는 다른 사람들을 예수님의 제자로 삼는 일에 헌신하고 있다. 한때 박해자였던 그는 이제 기꺼이 그리스도를 위해 박해를 감내하며 이를 특권으로 여긴다. 산토쉬 목사의 삶은 성경에 나오는 사울에서 바울로의 극적인 변화를 그대로 보여준다.

현대판 다메섹 도상 체험: 산토쉬 목사의 이야기
산토쉬와 그의 가족은 선물로 받은 신약성경을 들고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안경을 쓴 마른 체격의 50대 중반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맞이했다. 검은 바지에 검은 구두, 흰 셔츠를 입은 그는 교육받은 사람처럼 보였다. 두 손을 모아 합장하며 그가 인사했다. ‘자이 마시 키(Jai Masih Ki),’ ‘주를 찬양합니다’라는 뜻으로, 네팔 기독교인들이 흔히 쓰는 인사말이다.

오픈도어즈 현지 파트너가 그를 우리에게 소개하며 말했다. “이분이 산토쉬 목사님입니다. 나눌 이야기가 있으십니다.”

산토쉬 목사의 환한 미소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그가 한때 기독교인을 싫어하고 박해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나 훗날 그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가 된 후 스스로 박해와 폭력에 직면하게 되었다.

네팔 전통 모자인 형형색색의 다카 토피(Dhaka Topi)를 쓴 그는 나무 의자에 자세를 잡고 앉더니 우리를 향해 활짝 웃었다. 이야기할 준비가 되었다는 분명한 신호였다.

산토쉬는 힌두교 사제 가문 출신이다. 웃으며 그는 자신이 한때 기독교인과 기독교에 반대했다고 말했다. “저는 우리 동네에 있던 교회를 방해할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았고, 목사님을 조롱했습니다. 예배가 진행될 때마다 교회에 돌을 던졌지요.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저를 ‘쉐이탄(Shaitan)’[사탄]이라고 불렀습니다. 저는 그들의 예배를 방해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십대 시절 산토쉬는 문제투성이 삶을 살았다 – 자신의 종교와 사제 가문이라는 배경 때문에 고집이 셌다. 술을 마시고 싸움을 벌이는 등 나쁜 행실에도 빠져 있었다. 그 지역 사람들, 선생님들, 교장 선생님 모두 그의 거친 태도를 싫어했고, 항상 그에게 ‘쓸모없는 녀석’, ‘교화 불가능한 아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학창 시절, 산토쉬는 기숙사에서 한 기독교인 소년과 같은 방을 썼다. 상대의 종교적 배경 때문에 거의 교류하지 않았다.

의자에 앉아 있는 남자.
“한때 저도 진리를 모른 채 기독교인들을 똑같이 대했습니다. 이제 그들이 저를 박해하는 것은 그들 역시 진리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산토쉬가 말한다.

산토쉬는 십대 시절 겪었던 신체적 질병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15세 때부터 발작을 경험했고 여러 차례 기절했다. 가족은 무당을 찾아가고 치료를 위해 많은 돈을 썼지만 모든 노력이 허사였다. 많은 동물이 제물로 바쳐졌고, 거의 5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차도가 없었다. 그 사이 기독교인 룸메이트가 산토쉬에게 복음을 전하려 했지만, 그는 한결같이 거부했다.

산토쉬가 나눈다. “여러 번 기독교인 룸메이트가 예수님과 그분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려 했지만, 저는 항상 귀를 막았고 때로는 거칠게 대들기까지 했습니다. 제가 거부하고 적대적으로 대했음에도 그 친구는 늘 저를 돌봐 주었습니다. 한번은 제가 방에서 발작을 일으키며 쓰러졌는데, 그 믿는 친구가 저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순간 저는 치유되었고 몸이 완전히 건강해진 것을 느꼈습니다.” 이 치유를 통해 그는 서서히 그리스도의 능력을 깨닫게 되었고, 친구와 함께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약 20세 때 그는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님으로 영접하고 따르기로 결심했다.

자기 가족에게 멸시받다

산토쉬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형제자매와 함께 살았다. 기숙사에서 집으로 돌아온 산토쉬는 가족에게 자신의 새로운 믿음을 전했다. 가족들은 격분했고, 어머니는 나무 막대기로 그를 때렸으며 집에서 쫓아내기까지 했다.   

산토쉬는 처음으로 가족으로부터 적대감을 경험했다. 슬픔과 고통에 압도된 그는 담임 목사를 찾아갔다. “갈 곳이 없어서 목사님 댁으로 가서, 가족이 어떻게 반응했고 저에게 무슨 일을 했는지 설명드렸습니다. 목사님은 석 달 동안 저를 자신의 집에 머물게 해주셨습니다. 그 후 저를 성경 훈련에 보내주셨습니다.” 목사님에 대한 감사로 눈이 가득 찬 채 그가 말했다.

산토쉬는 성경을 더 배우고 이해하기 위해 한 달 과정의 성경 공부에 등록했다.

“성경학교에서 한 달간 훈련을 받은 후, 예수님에 대한 제 믿음을 어떻게 나눌 수 있는지 배웠습니다. 큰 열정을 품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지만, 사람들은 ‘먼저 네 가족에게 전도하고 나서 우리에게 오라’며 조롱했습니다.” 산토쉬가 다리를 꼬고 의자에서 자세를 바꾸며 말한다.

그는 마음속 깊이 가족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해야겠다는 도전을 받았다.

온 가족을 구원으로 이끌다

몇 달 후, 망설이면서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산토쉬는 가족을 찾아가 질병에서 구원받은 일과 변화된 삶에 대해 설명했다. 가족은 무관심했지만 그는 계속 복음을 전했다. 예전의 거친 태도와 달리 얼마나 차분하고 바르게 행동하는지를 보면서, 가족들도 점차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그 결과, 선물로 받은 신약성경을 들고 온 가족이 함께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목사들은 보통 새 신자들에게 신약성경을 제공하는데, 신학적 안내 없이 구약성경을 이해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산토쉬의 친척들과 지역 사회는 이러한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들에게 맞섰다. 일반적으로 힌두교 사제와 그 가족은 지역 사회의 나머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다. 그러나 갑자기 사제 가문 출신인 산토쉬의 가족은 이웃들에게 불가촉천민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산토쉬와 그의 가족은 처음으로 지역 사회와 같은 마을 사람들로부터 이러한 냉대와 적대감을 경험했다.  

산토쉬는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자신과 가족이 겪은 고통을 나누었다. “마을 사람들 중 아무도 우리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발자국조차 피했습니다. 혹시라도 우리 곁을 지나가게 되면 즉시 정화 의식을 행했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불가촉천민으로 취급했습니다.

무릎을 꿇고 성경을 읽는 남자.
산토쉬는 이제 자신의 교회에서 박해 대비 훈련을 진행하며 양 떼를 끊임없이 강건하게 한다.

가게에서조차 물건을 사지 못하게 했습니다. 물건을 사러 가면 당신들 돈은 필요 없으니 나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웃 마을까지 가서 물건을 사 가지고 우리 마을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마을의 억압적인 환경에도 불구하고, 산토쉬는 목사가 마을들로 사역을 나갈 때 계속 동행했다. 영적으로 성장하면서 목사는 그를 더욱 격려해 주었다.

한편, 산토쉬와 그의 가족은 정신적, 감정적 모욕만 당한 것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신체적 학대까지 가하기 시작했다. 산토쉬가 그들에게 성경 말씀을 설명하려 할 때마다 그들은 그의 말을 참지 못하고 심하게 때렸다. 어머니와 누이들이 그를 보호하고 감싸려 하면, 지역 사회 구성원들에게 그들 역시 거칠게 다루어졌다. 한번은 심하게 구타당한 후 들판으로 끌려가 그곳에 버려지기도 했다.

친척들에게 새로운 믿음을 이해시킬 수 없었고, 마을 사람들의 멸시를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산토쉬와 그의 가족은 교회에서 더 가까운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

벼려진 도구 – 주인의 사역을 위해 준비되다

자신의 교회에 주일학교 교사가 필요함을 인식한 산토쉬는 단기 훈련 과정을 마치고 어린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후 담임 목사의 추천으로 추가 학업을 위해 성경대학에 입학했다.

몇 년 후, 산토쉬는 고향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사역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교회를 시작한다는 이유로 다시 한번 지역 사회의 극심한 반대에 직면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의 작은 교회를 공격하고 가구와 음향 장비를 파괴했으며, 경찰에 고발하기까지 했다. 경찰은 정부 허가 없이 예배를 진행했다며 그를 질책했다. 마을 사람들의 적대감이 너무 격렬해져서 그는 다시 한번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지역 사회에서 왜 그와 그의 사역에 대한 저항이 그토록 심한지 물었을 때, 산토쉬는 다카 토피(Dhaka Topi)를 고쳐 쓰며 대답했다. “우리가 브라만(사제 가문) 출신이기 때문에, 우리 지역 사회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기독교인이 된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기독교가 하위 카스트 사람들의 종교라고 여기며 우리를 멸시합니다. 카스트 제도는 문화에 깊이 뿌리박혀 있고, 사람들은 수 세기 동안 그것과 함께 살아왔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행했던 것이고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박해에 맞설 준비를 갖추다

산토쉬는 다른 곳으로 이주했는데, 그곳에서도 지역 사회의 반대에 계속 직면하고 있다. 그러나 상황은 이전과 다르다. 이제 그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배웠기 때문이다. 몇 년 전, 그는 한 친구로부터 오픈도어즈 파트너가 진행하는 박해 대비 세미나에 대해 듣고 참석하기로 결심했다. 그가 말한다. “이 훈련을 더 일찍 받았더라면, 제 교회와 제가 겪었던 어려움을 더 잘 대처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훈련은 상황의 현실을 이해하게 해주었고, 반대에 맞설 용기를 주었습니다.”

교회 성도들도 이러한 가르침으로 무장시키기 위해, 그는 이제 자신의 교회에서 박해 대비 훈련을 진행하며 양 떼를 끊임없이 강건하게 하고 있다.

산토쉬가 감사를 표하며 말한다. “저와 제 교회를 무장시켜 주시고, 박해에 대한 성경적 관점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어떻게 맞설 수 있는지를 이해하도록 함께해 주신 이 사역에 감사드립니다.”

그가 덧붙인다. “저와 제 가족뿐만 아니라 이 훈련은 우리 교회와 새 신자들이 지역 사회의 적대감에 맞설 준비를 갖추도록 돕고 있습니다. 이 훈련을 통해 우리는 박해에 대한 성경적 관점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역경을 사용하셔서 우리를 강하게 하시고, 우리 주변 사람들에게 소금과 빛이 되게 하신다는 것을 말입니다.”

기도하는 남자.
산토쉬가 우리의 기도를 요청한다.

자신을 박해하는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느냐는 질문에 산토쉬가 미소를 지으며 나눈다. “한때 저도 진리를 모른 채 기독교인들을 똑같이 대했습니다. 이제 그들이 저를 박해하는 것은 그들 역시 진리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하라고 가르치셨듯이, 저는 그들을 용서하고 그들이 진리를 알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가 자신의 교회를 위한 기도를 요청한다. “저와 교회 성도들, 그리고 박해받고 이주를 강요당하는 많은 이들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사람들이 복음을 이해하고 긍정적으로 반응하도록 기도해 주세요.” 자신의 지역 사회를 향한 깊은 짐을 안고 그가 마무리한다.

*보안상의 이유로 이름이 변경되었습니다.

기도해 주세요

  1. 산토쉬 목사와 그의 사역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그는 특히 고향 마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열정을 품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셔서 구원의 메시지를 받아들이도록 기도해 주세요.
  2. 산토쉬 목사는 소규모 가정교회 목사들을 교회 사역에서 훈련하고 무장시키는 것에 부담을 갖고 있습니다. 그가 이 비전을 이룰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3. 박해 대비 훈련이 신자들이 역경에 맞서도록 준비시키는 만큼, 그들이 포기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위해 굳건히 설 수 있는 영적 힘을 얻도록 기도해 주세요.
  4. 풍부한 다양성을 가진 나라 네팔을 위해, 그 국민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하고 변화된 삶을 살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5. 박해가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네팔 남부 지역에서 목사들과 교회들이 끊임없이 공격받고 있습니다. 소규모 가정교회 신자들과 목사들이 반대에 직면할 때 믿음 안에서 굳건히 서고, 하나가 되어 함께 도전에 맞설 수 있도록 붙들어 주세요.
  6. 교회와 신자들, 목사들이 극단주의자들의 괴롭힘을 피해 외진 지역으로 이주를 강요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인도하심, 보호하심이 그들 위에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