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비비’ 석방 후 인터뷰 파키스탄 신성모독법 최초의 여성 사형수
아시아 비비가 옥중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간수들에게 받는 야만적인 처우였습니다:
“가장 괴로웠던 것은, 목에 쇠목걸이를 씌우고 열쇠로 잠근 다음 긴 쇠사슬을 늘어뜨려 놓았다가 이동할 때 간수의 손목에 차고 있는 수갑에 쇠사슬을 연결해서 개처럼 끌고 다녔던 것이예요. 간수는 열쇠를 가지고 목에 두른 쇠목걸이를 마음대로 조일 수 있었어요. 목이 조여 숨쉬기가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아시아 비비는 감옥에서 그러한 시련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자기의 기독교신앙 덕분이었다고 BBC인터뷰에서 말했습니다. 그리고 사형수로 감옥에 있으면서도 자기가 자유의 몸이 될 것을 항상 믿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나에게 ‘신앙을 바꿔라 그러면 풀어주겠다’고 했지만 저는 ‘아니요, 나는 내 신앙을 가지고 감옥에 있겠어요.’라고 말했어요.”
“나는 남편으로부터 전세계가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들었어요. 교황님도 저를 위해 기도하셨다고 들었어요. 그런 소식은 저를 기쁘게 했습니다. 전세계가 저의 불행이 끝나기를 기도해주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정말 전세계 많은 분들의 기도 덕분에 제가 풀려나게 된 거 같아요”
아시아 비비는 자기를 도와주던 두 파키스탄 정치인들이 살해된 소식을 옥중에서 들었을 때의 슬픔도 회상했습니다: (주:샤바쯔 바티 Shahbaz Bhatti 장관과 살만 타세르 Salman Taseer 주지사는 아시아 비비의 구명을 위해 노력하다가 각각 피살됨-타세르 전 주지사를 살해한 범인은 그의 경호원으로 그가 신성모독을 옹호했기 때문에 살해했다고 당당하게 주장함)
“많이 울었어요. 감옥에서 일주일 넘게 울었습니다. 지금도 그분들만 생각하면 슬픔으로 가슴이 미어져요. 그분들이 보고 싶어요.”
아시아 비비는 자기를 죽이라고 요청한 이들에 대해 어떤 미움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화가 나지 않아요. 마음으로부터 모두 용서했어요. 마음 속에 응어리가 없습니다. 아이들을 떼어놓고 감옥으로 가야했으니 그동안 인내하는 법도 배웠고요.”
마지막으로 아시아 비비는 조국 파키스탄을 여전히 사랑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언젠가는 조국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를 풀어준 것도 우리나라예요. 그 사실이 나는 자랑스러워요.”
“우리나라에서 저는 위험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저 스스로의 의지로 우리나라를 떠난 거예요.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이라 떠났지만, 저는 지금도 마음속으로 우리나라를 사랑해요. 지금도 우리나라를 존경하고, 살아있는 동안에 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고 있어요.”
오픈도어 사역자는 아시아 비비와 교제를 마치고 헤어진 후,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그녀가 잘 지내고 있고 고통에서 잘 회복되고 있는 듯이 보일 것입니다. 용기있고 담대해 보이지요. 그러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녀의 회복의 여정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압니다. 여유와 무조건적 사랑과 기도의 후원과 친구들이 필요합니다. 그녀의 스토리를 원하는 사람이 아닌 진정한 친구가 필요해요.” 라고 말했습니다.
故 살만 타세르 주지사의 아들 샨 타세르(Shaan Taseer) 씨는, 2019년 미국의 ‘종교 자유 증진을 위한 회의’에 참석해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신성모독죄 희생자’가 된 아시아 비비는 이제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오늘날 파키스탄에는 여전히 신성모독 혐의로 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200여 명의 아시아 비비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아시아 비비가 투옥되어 있는 동안, 어느 박해지역의 성도들은 매일 새벽 1시에 모여 동그랗게 둘러서서 주님의 보좌 앞에 아시아 비비를 올려드리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신성모독법으로 지금도 파키스탄 감옥에 있는 200여 명의 크리스천 형제자매들을 주님의 보좌 앞에 올려 드리고 기도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