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오디샤(오리싸) 칸다말 7명의 크리스챤들, 9년간의 수감 끝에 보석으로 풀려나다 12월13일 World Watch Monitor
11년 전인, 2008년 12월13일, 인도 남성 한 명이 체포되었다. 처음에는 곧 혐의가 벗겨질 것으로 여겨졌다. 그는 적극적으로 지역 정치활동을 했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사소한 일일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그는 10년 이상 구금된 후 지난 2019년 5월에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목사인 그의 사촌이 그가 경찰서에 붙들려 갈때 동행했었다. 며칠이 지나도 그(Gornath Chalanseth)가 돌아오지 않자 목사님은 경찰서로 다시 찾아갔고, 사촌이 힌두 승려(Swami Laxmananada Saraswati) 살해죄로 고소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힌두 승려 스와미는, 2008년 8월23일, 힌두교도들이 힌두교 신인 크리슈나의 생일을 축하하는 잔마쉬타미 축제 중에 총에 맞아 죽었다.
크리스챤들이 스와미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는 거짓 루머가 들불처럼 퍼져나갔다.
이러한 루머는 아주 쉽게 퍼져나갔다. 스와미 승려가 죽은지 며칠 후에, 인도 동부의 오디샤(오리싸)주, 칸다말에서 그의 시신을 들고 수천명의 힌두교도들이 장례행렬을 이어갔다. 오디샤 주의 가장 낙후된 지역 중의 한 곳에 사는 힌두교도들의 원시적인 복수심을 자극하고 선동하는 것이었다.
“힌두교 극단주의자들은 그 시신을 구경거리로 만들어 선동에 이용하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가까운 길을 놔두고 일부로 우회로를 택해서 행진을 했어요.”라고 인권단체들은 전했다.
ㅇ오리싸(오디샤주로 이름 변경됨) 주 칸다말 지역과 장례행렬의 우회 행로
그렇게, 스와미의 죽음은 인도에서 수백년 만에 최악의 반기독교 폭력사태를 유발시켰다. 오디샤 주 칸다말에서 거의 100명의 크리스챤들이 죽고, 300개의 교회와 6000개의 개인주택들이 파괴되었다. 이 폭력으로 56,000명의 크리스챤들이 집을 떠나야했다. 크리스챤 주택들에 가해진 피해의 3/4는 장례행렬이 지나가는 길을 따라 발생했다. 장례행렬 군중들이 외친 표어 중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 “크리스챤들을 죽여라, 그들의 집과 재산을 파괴하라”
자료사진: 2008년 당시 파괴된 크리스챤들의 집 모습
찰란셋과 추가로 6명, 모두 7명이 살해죄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이들을 위해 www.release7innocents.com 사이트가 만들어지고 구명운동이 시작되었다.
ㅁ무고하게 종신형을 받은 7명의 크리스챤
2008년 10월에, 낙살라이트(공산주의 운동) 최고 지도자 중의 한사람이 스와미 승려 살해가 자기의 소행이라고 밝혔다. 그그는 결국, 2014년 7월에 체포되어 2019년 5월에 스와미 살해범으로 기소되었다. 그로부터 3일 후에 고르나트 찰란셋은 마침내 감옥에서 풀려나왔다. 그가 사촌 목사님과 함께 경찰서에 간지 10년 5개월 6일 만이었다. 그러나 그의 종신형이 감형된 것은 아니다.
7명 중에 3명은 달리트 천민이고, 다른 4명은 기타부족민들이다. 그들은 모두 계속해서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그 중 6명은 글을 모르고, 1명은 지적 장애가 있다.
고르나트는 작년 12월 오디샤 고등법원에서 보석신청이 두 번 거절된 후, 대법원에 보석신청을 낸 것이다. 두번째로, 비자이는- 7명 중 어릴때 학교에 다닌 유일한 이 -7월에 풀려났다. 그리고 지난 주에 나머지 5명이 모두 풀려났다.: 마지막 사람은 보석명령이 떨어진 법원으로부터 그가 수감된 감옥이 80km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며칠을 더 기다려야 했다. 법원당국이 보석명령이 우편송달만 가능하다고 했기 때문이다.
일단 보석을 받으면, 대법원의 명령이 없는한 감옥으로 되돌아가야하는 기한은 없다. 그러나 이들은 여전히 오디샤 고등법원으로부터 무죄선고를 받아야 한다.
“보석으로 풀려났지만, 무고한 살인죄목의 종신형에 대하여 무죄선고를 받아야 하는 아래 7명을 위하여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1. 사나탄 바다마지 Sanatan Badamajhi
사나탄의 아내에 의하면, 남편이 2008년 10월4일 체포되기 전에 이미, 몇몇 힌두교 리더들로부터 체포 경고를 받았다고 한다. 스와미가 살해되던 날, 사나탄은, 36세인데, 그날 가축을 돌보고 있었다. 힌두교도인 이웃 주민의 증언이다. “경찰은 아무 조사도 하지 않고, 우리한테 물어본 것도 없어요. 우리를 불렀다면 우리가 증언을 했을 거예요.”라고 그 이웃은 말했다.
판사는 그의 집에서 총이 발견됐다고 했지만, 그의 아내는 한번도 그집에 총이 있었던 적이 없다고 한다. 경찰은 또한 도끼도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경찰과 함께 찾아온 힌두교도의 집에 있던 거라고 한다. 나중에 그가 경찰이 자기 집 도끼를 가져갔다고 불평을 해서 알게 됐다.
2. 문다 바다마지 Munda Badamajhi
34세의 문다는 2008년 10월4일에 두링포디 마을에 있는 자기 집에서 체포되었다. 검찰은 그의 집에서 총이 발견되었다고 했지만, 아내는 남편이 총을 사용할줄도 모르고 총을 가진 적도 없다고 말했다. 문다는 언어장애가 있다.
3. 두르조 수나마지 Durjo Sunamajhi
35세의 두르조도 2008년 10월4일에, 경찰이 집으로 찾아와 체포해갔다. 경찰은 그의 집에서 고장난 총을 발견했지만, 그의 아내는 스와미 승려 살해 사건 당일 남편은 기차를 타고 케랄라로 가는 중이었고, 총은 만져본 적도 없으며, 그 고장난 사냥용 총은 두르조의 할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사용한 것이 전부라고 했다.
4. 비자이 쿠마르 산셋 Bijay Kumar Sanseth
비자이의 아내 말에 의하면, 2008년 12월 12일에 경찰이 전화를 해서 비자이에게 다음날 경찰서로 와보라고 했고, 그 다음날 경찰서에 간 비자이는 그날부터 2019년 7월까지 구금되었다.
그런데도 경찰은 사건을 다르게 기록했다. 12일에 비자이가 고소된 다른 세 명의 크리스챤들을 정글에서 만났으며, 그들이 스와미 살해 계획을 세우는 것을 들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42세인 비자이는 어디를 가나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는데, 왜 감옥에 있어야 하느냐고 그의 아버지는 하소연했다. 그리고 그가 정부 고위관료들과 접촉이 있어 시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이런 비극이 생겨났다고도 했다.
5. 바스카르 수나마지 Bhaskar Sunamajhi
32세의 바스카르는 2008년 12월 13일 친구들과 카드게임을 하는 중에 경찰이 들이닥쳐 끌려갔다. 경찰은 그의 아내에게 그가 다음날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말했는데, 올해 12월이 되도록 9년 이상을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던 것이다. 판사는 수나마지가 마오이스트들(공산주의자들)과 긴밀한 관계로 몇주간 동안 마오이스트 캠프에서 훈련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그가 집을 멀리 떠난 적이 없다고 했다.
이웃사람도 이는 완전한 거짓말이며, 스와미 사건 당일 그는 자기들과 같이 있었다고 했다.
6. 부다데브 나약 Budhadeb Nayak
그가 체포 되기전에, 마을 어른들 중 한 명이 부다데브에게 피신할 것을 조언했지만 그는 잘못한 일이 없다고 하며 피신하지 않았다. 그는 42세이다.
경찰이 그의 집으로 찾아와 20세된 그의 장남에게 곧 아버지를 체포할 것이라고 위협했고, 2008년 12월 13일, 경찰이 다시 와서 그를 연행했다. 그의 아내는 ‘남편이 사롱 하나만 입고 있었는데, 경찰이 남편의 손을 묶고 데리고 갔다. 남편이 옷을 달라고 해서, 쇼올을 주었다’고 회상했다.
3일 후에 가족이 발리루다 감옥에 있는 남편을 찾아갔더니, 경찰은 그가 12월12일 정글에서, 고소된 다른 세명과 마찬가지로, 마오이스트(공산주의자) 모임에 같이 있었다고 말했다.
7. 고르나트 챨란셋 Gornath Chalanseth
41세의 찰란셋은 2008년 12월 13일 경찰에 연행되어 구금되었다. 처음에 그는 아무 혐의도 없었다. 그는 정치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을 뿐이었다.
목사인 그의 사촌이 그가 경찰서로 연행될 때 동행했다. 며칠이 지나도 그가 돌아오지 않자, 그의 사촌 목사님이 경찰서로 찾아갔고, 그가 살인죄로 고소되었다는 말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