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에 남은 신자들을 강하게 하소서
사진) 예멘 신자 ‘자이드’는 꿈에서 밝은 빛 가운데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2025. 12. 19] 자이드(Zaid)*는 위험 앞에서도 굳건히 서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러분의 기도와 지원이 필요합니다. 자이드는 예멘의 대학생입니다. 이 형제는 보수적인 이슬람 가정에서 자랐는데요. 16세 때 역사와 예언자 무함마드의 삶, 그리고 이슬람이 가르치는 것 사이에서 수많은 모순을 깨닫고 무신론자가 되었습니다. 마음의 공허함을 채우려다 마약 중독에 빠지기도 했었는데, 꿈속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자이드는 소셜 미디어와 온라인 사역을 통해 예수님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며 먼저 연락을 해왔습니다. 이 형제는 믿게 되었고, WhatsApp을 통해 오픈도어선교회 동역자들로부터 제자 양육을 받았으며, 침례를 받기로 결심했습니다. 놀라운 침례식을 통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을 대면해 만난 후, 자이드는 다른 이들을 제자로 삼고 주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이 형제가 숨겨두었던 성경을 발견하면서 여정은 험난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이드의 믿음과 결단은 이 형제가 고국에 머물게 하며, 극단주의자들이 이슬람에서 개종한 기독교인을 붙잡고, 감금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는 곳에서 기쁜 소식을 전파하도록 붙들어 주고 있습니다. 자이드*가 집에서 쫓겨난 날은 쌀쌀한 저녁이었습니다. 길을 잃고 혼란스러운 채로 예멘의 어느 도시 거리를 배회했습니다. 마음속에 의문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이 새로운 믿음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 걸까? 내가 겪고 있는 이 모든 일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걸까?’ 가족의 집에서 강제로 떠나야 했던 이유는 바로 새로운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자이드에게 오직 사랑만을 보여주었던 아버지가 때린 이유도, 집 안에 이틀 동안 감금되었다가 거리로 쫓겨난 이유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거부당한 이유도 바로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자이드의 새로운 믿음은 그의 모든 것을 앗아갔습니다. “그날 밤을 거리에서 보냈습니다.” 형제는 회상합니다. “그곳에서 잠을 잤어요. 갈 곳도 없었고, 해결책을 찾을 만큼 정신이 맑지도 않았습니다.” 의구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자 자이드는 추위에 몸을 떨었습니다. 하지만 그 혼란 속에서, 정서적·육체적 황폐함을 깨뜨리는 선명한 생각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그래, 예수님을 아는 것은 내가 겪고 있는 이 모든 일보다 더 가치 있어.’ 자이드의 주님과의 동행은 결코 쉽거나 안전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대담한 예멘 형제의 고백을 듣는 것은, 자신의 믿음을 위해 모든 것을 건 수백만 명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상정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한 편의 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이드는 예멘의 보수적인 이슬람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가족들이 기도하고 예배하는 모습을 봤어요.” 그가 말합니다. “기도는 중요하고 무거운 의무였어요.” 매일의 기도는 책무였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가 오직 그 의무를 얼마나 잘 이행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배웠습니다. “기도해야만 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널 사랑하지 않을 것이고, 결국 불 속에 들어가 구이 기계 위의 닭처럼 타버리게 될 것이라고 배웠어요.” 형제는 자신이 자라온 환경을 돌아보며 말합니다. “이슬람과 무함마드는 삶의 전부였어요.” 하나님께 거부당하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습니다. “자라면서 정기적으로 모스크에 가고 기도하는 일을 거르지 않았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모든 가르침과 의식을 따랐죠.” 형제는 말합니다. “하나님이 저를 사랑하시고 기뻐하셔서 사후 세계를 보장받고 싶었거든요. 이슬람 학문에 몰두했고 쿠란의 일부를 읽고 외웠어요. 온라인에서 이슬람을 온 마음으로 변호했고 사람들이 이슬람만이 유일한 길임을 알기를 원했어요.”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온전히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죠.” 의구심을 품기 시작한 것은 16세 때였습니다. 어느 날 밤, 기도를 마치고 생각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내가 천국에 갈 수 있을까? 보장된 걸까?’ 종교의 모든 계율과 금기 사항을 따르는 실천적인 무슬림으로서 당연히 들어갈 수 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아주 작은 실수 하나로도 하나님이 저를 미워하실 수 있고, 이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단 한 번의 미끄러짐으로도 그분은 제가 낙원에 들어가는 것을 막으실 수 있다고요.” 자이드가 별이 빛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더 많은 의문과 생각들이 떠올랐습니다. ‘이 보복하시는 하나님은 왜 나를 창조하셨을까?’ ‘그저 내가 여기 서서 끊임없이 이 의식들과 기도를 반복하다가 어느 날 죽기를 바라시는 걸까?’ 죽음 이후의 좋은 삶에 대한 보장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 생각때문에 괴로웠습니다. “뼛속까지 실천하며 자라온 이 종교를 포함해 모든 것이 의심스러웠어요.” 형제는 자신이 들어본 다른 신앙과 종교들을 탐구하고 자신의 믿음을 시험하기 시작했습니다. 천천히, 자이드가 더 깊이 파고들수록 자신의 종교에서 결함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자라면서 배운 많은 생각들이 더 이상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더라고요.” 그가 설명합니다. “예언자의 삶, 이슬람의 역사… 무언가 잘못되어 있었어요. 쿠란을 읽는 것을 멈췄고, 하루 다섯 번의 기도를 중단했어요… 그러고 나니까,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라는 무서운 생각이 밀려와 괴로웠어요.” 마침내 자이드는 자신이 이슬람을 떠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였습니다… 평생 자신과 가족의 삶에서 종교가 전부였기에, 이를 인정하기까지 정말 쉽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가슴 깊은 곳에는 커다란 공허함이 남았습니다. “맹목적으로 따라야 했던 의무가 없어졌으니 가슴에 얹혀있던 무거운 바위가 내려간 듯 홀가분했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혼란스러웠죠.” 그렇게 길을 잃은 자이드 형제는 참된 진리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커져가는 공허함 자이드는 어딘가에 진짜 ‘진리’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것을 찾고 싶었고 찾아야만 했습니다. “온라인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소셜 미디어를 통해 연구하고 토론했어요.” 이전에는 온라인 공간을 이슬람을 변호하는 데 사용했다면, 이제는 그 반대편에 서 있었습니다. “목적이 바뀌었죠. 저처럼 사람들이 이슬람을 떠나도록 설득하고 싶었어요. 저와 같은 무신론자들과 이야기하고 싶었고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었죠.” 6개월 동안 탐색한 후, 공허함은 더욱 커졌습니다. “외로웠어요.” 그가 말합니다. “대화할 수 있는 사람도,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사람도 없었으니까요.” 가족에게는 자신의 생각과 고충을 말할 수 없었고,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는 단 한 명뿐이었는데 그 친구마저 늘 곁에 있지는 못했습니다. “그 때는 힘들었어요.” 형제는 기억합니다. “유대교에 대해 조금 읽다가, 기독교에 대해 조금, 그다음엔 무신론에 대해 조금 읽기 시작했습니다. 페이스북, 유튜브, 검색 엔진을 뒤지며… 답을 찾아야 했습니다. 이 커져가는 공허함을 채울 수 있는 무언가를요.” 자이드는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다양한 것들에 손을 댔습니다. “캇(khat, 예멘에서 널리 사용되며 합법적인 경미한 흥분제 마약)을 사용하기 시작했죠.” “점차 나태함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목적의식이 없었어요. 나쁜 말을 쓰고, 나쁜 무리와 어울렸으며, 공허함은 커져만 갔어요. 정신적으로 약해졌어요. 마약을 사용할 뿐만 아니라 밀수하기 시작했습니다. 완전히 길을 잃었어요.” 그러던 중 자이드에게 훨씬 더 큰 상실의 아픔이 찾아왔습니다. 예멘을 황폐화시킨 내전 통에 가장 친한 친구를 잃은 것입니다. 이 친구는 자이드와 함께 일하며 그의 수많은 고민을 들어주던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한편으로는 마약을 권했던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친구가 떠나자 자이드가 느끼는 외로움과 고립감은 극에 달했습니다. 자이드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합니다.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어요. 온몸의 진이 다 빠져나가고 속이 텅 빈 것 같았죠. 그 끔찍한 재앙과 고난 한가운데 내 곁엔 아무도 없었어요. 그저 고통과 걱정을 짊어진 채 홀로 멍하니 앉아 있을 뿐이었습니다.” 자이드는 진리를 찾기 위한 탐색을 계속 이어갔지만, 삶은 늘 공허했고 날이 갈수록 절망만 깊어졌습니다. 바로 그때, 예수님이 그를 찾아오셨습니다. 사진) 자연 속에 있는 자이드 정원 속의 빛 가장 친한 친구를 잃은 슬픔 속에서도 자이드는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여정을 멈추지 않았고, 기독교에 대해 새로운 사실들을 배워 나갔습니다. 그동안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놀라운 내용들이었습니다. 자이드는 설명합니다. “전에는 그리스도인에 대해 엄청난 편견을 가지고 있었어요. 제게 기독교인은 그저 삼위일체를 믿고 돼지고기를 먹는 이교도이자, 한마디로 고약한 원수일 뿐이었죠. 그런데 온라인에서 마주한 그들의 이야기는 뜻밖에도 제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처음부터 마음을 열었던 것은 아닙니다. 자이드는 말합니다. “사실 처음에는 그 사람들을 공격하려고 기독교 관련 글들을 읽기 시작했어요. 어떻게든 온라인 토론에서 이겨보려고 애를 썼죠. 그러다 논리로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나 보려고 일부러 심한 욕설을 퍼붓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제 마음을 흔든 건 그들의 ‘사랑’이었어요. 그토록 모욕을 당하면서도 저를 향해 맞받아 욕하지 않고 사랑으로 대하더라고요!” 평생 예멘에서만 살아온 자이드는 이슬람 경전인 쿠란에서 예수님을 그저 한 명의 예언자로 언급한 것 외에는 예수님에 대해 아는 게 없었습니다. 당연히 살면서 진짜 그리스도인을 만나본 적도 없었기에, 자신이 기독교 신앙에 대해 무지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그때부터 조금씩 태도가 바뀌었어요. 말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이해하고 싶어서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자신의 형상대로 우리를 창조하셨으며, 우리를 살리려고 아들까지 보내어 죽게 하셨다는 이야기는 제게 완전히 새로운 충격이자 진리로 다가왔습니다.” 결국 자이드는 자신이 읽고 듣던 이 새로운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기로 결심했습니다. “어느 날 밤, 잠들기 전에 간절히 기도를 드렸어요. ‘하나님, 만약 당신이 정말 기독교 안에 계신다면 제게 알려주세요. 그럼 제가 당신께로 가겠습니다. 정말 살아 계신다면 지금 어디에 계시는지 말씀해 주세요. 제발 저를 구원해 주세요’라고요.” 그날 밤을 시작으로 몇 날 밤 동안 자이드는 연달아 똑같은 꿈을 꾸었습니다. “푸르고 울창한 정원에 서 있었는데, 어디선가 강렬한 빛이 비추었어요. 그 빛이 내게 점점 다가오더니 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내가 아흔아홉 마리를 남겨두고 너를 찾아왔다’고요. 너무 놀라 꿈에서 깼습니다.” 자이드는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한 꿈을 회상하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화면을 확인하려고 전화기를 켜자마자 사진 한 장이 눈에 들어왔어요. 푸르고 울창한 정원에서 양들에게 둘러싸여 계신 예수님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진 밑에는 꿈에서 들었던 것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문구가 적혀 있었죠. ‘그가 아흔아홉 마리를 남겨두고 너를 찾아왔다’고요. 그 순간 정말 온 세상이 우뚝 멈춰 버린 것만 같았습니다.” 자이드는 자신이 간절히 구했던 확신을 마침내 얻었음을 알았습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 밀려왔어요. 내가 드디어 하나님을 만난 거구나 싶었죠! 그 순간 기독교의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시며,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자이드와 주님의 동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세상 한복판’에서 받은 침례 자이드는 예수님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습니다. 자이드는 당시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합니다. “그길로 곧장 성경 앱을 다운받아서 읽기 시작했어요. 하나님이 저 같은 사람에게 직접 자신을 보여주신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깊은 어둠 속으로 끝없이 추락하던 저를 건져주신 거예요. 아무것도 믿지 못하던 방황의 길에서 저를 끄집어내, 그분의 따뜻한 빛 가운데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 꿈은 무신론자로 살던 제 인생의 완벽한 전환점이었고, 저는 그렇게 비로소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으로서 새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개념은 자이드가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평생 왜곡된 하나님 상(像)을 주입받으며 자랐기에, 자신이 기존에 알던 신관을 완전히 버리고 하나님의 참모습을 새로이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자이드는 고백합니다. “영적인 갈급함에 목이 말랐습니다. 더 배우고 깊이 알고 싶었지만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온라인을 통해 몇몇 사람들에게 연락을 취해 보았습니다.” 아시다시피 예멘에는 예수님에 대해 마음 편히 배울 수 있는 공개적인 교회가 단 한 곳도 없습니다. 자이드는 설명합니다.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직접 만나 모임을 가질 수 있는 형편이 전혀 안 됐어요. 모든 소통은 오직 온라인으로만 이루어졌죠. 그렇게 일 년 반 동안 제자 양육 과정을 거치면서 예수님을 향한 믿음이 조금씩 자라났습니다. 당시 WhatsApp(모바일 메신저)을 통해 ‘알라’라는 이름의 선교회 동역자 형제님과 꾸준히 메시지를 주고받았는데요. 그분을 직접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어떻게 생기셨는지도 몰랐고, 심지어 목소리조차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혹시 모를 보안 위험 때문에 오직 텍스트로만 대화를 나눠야 했거든요. 하지만 그런 제약 속에서도 영적인 갈망을 채울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흡수하고 싶었습니다.” 새로운 신앙 안에서 제자 양육을 받으며 자이드는 자신이 깊이 읽고 묵상하던 말씀에 순종하여, 침례를 받기로 결심했습니다. 자이드는 당시를 이렇게 떠올립니다. “알라 형제님이 침례 일정을 잡아주겠다고 했어요. 제 결심이 정말 확고하다면, 제가 있는 곳 근처에 사는 한 형제님을 보내 침례를 받게 해주겠다고 하더군요. 당연히 제 마음은 확고했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고 싶었으니까요.” 당시 자이드가 침례를 받는다는 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천만한 일이었습니다. 만약 자이드나 그를 만나러 온 남자가 발각되기라도 하면 감옥에 갇히는 것은 물론, 심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이드에게는 예수님을 향한 사랑과 헌신이 그 어떤 두려움보다 훨씬 컸습니다. 자이드는 그 긴박했던 날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길거리에서 [알라 형제님이 보낸] 그분을 만났습니다. 가볍게 악수를 나누고 우리는 함께 공공 수영장으로 걸어갔어요. 하필 그날따라 수영장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죠. 우리는 조심스럽게 수영장 모퉁이에 있는 계단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분은 [제 신앙을 확인하는] 두 가지 짧은 질문을 던진 뒤, 제게 침례를 주었습니다. 물속에 완전히 들어갔다 나오자마자 우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즉시 그 자리를 떠났어요. 그날 이후로 그분을 다시는 보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제가 예멘에서 다른 그리스도인을 눈앞에서 직접 마주한 생애 첫 순간이었습니다.” 그날 이후로도 자이드는 성경 공부를 멈추지 않았고, 성령께서 자신을 인도하시며 믿음을 자라나게 해주시기를 간절히 의지했습니다. 자이드는 말합니다. “이 성령님께서, 무력한 제가 예멘 땅에서 기적 같은 삶을 살아가게 하신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나라의 많은 젊은이들이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면,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 예멘을 떠나곤 합니다. 저는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가요! 하지만 저는 떠나고 싶지 않았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끝까지 이곳에 남아 제 동포들을 섬기고 싶습니다.” 자이드의 삶에 일어난 변화는 누가 봐도 분명했습니다. 자이드는 고백합니다. “저는 주님 안에서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났습니다. 하나님은 저를 지독한 중독에서 해방시켜 주셨고 깨끗하게 씻어주셨어요. 마음속에 드는 악한 생각들과 싸워 이길 힘을 주셨고, 늘 피폐했던 정신 건강도 훨씬 좋아졌습니다. 주님과 더 깊은 시간을 보낼수록 그분은 저를 매일 새롭게 변화시켜 가고 계십니다.” 그러나 이 척박한 예멘 땅에서, 자이드가 마주해야 할 위험은 이제 막 시작된 것에 불과했습니다. 가문의 수치, 가족에게 멸시받다 자이드가 본격적으로 사역을 시작하자, 영적인 공격이 거세게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자이드는 말합니다. “주변 사람들과 갈등이 생기는 등 온갖 어려움이 닥쳤지만, 신기하게도 성경을 읽을 때면 늘 말할 수 없는 평안함을 느꼈어요. 예수님께서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말씀하시며, 걱정하지 말고 나를 믿으라고 약속해 주셨거든요. 고통과 걱정, 수많은 문제 속에서도… 저는 오직 그분만을 신뢰했습니다.” 자이드는 가족들에게 자신이 이슬람을 떠났다는 사실을 비밀로 했지만, 가족들은 그의 눈에 띄는 변화를 금방 눈치챘습니다. “가족들이 제게 묻곤 했어요. ‘너 담배 끊었니? 요즘은 왜 캇(마약성 식물)도 안 씹는 거냐? 정말 다 끊은 거야?’라고요. 주님 안에서 정신이 맑아지고 삶이 훨씬 성숙해지니, 주변 사람들이 먼저 알아차린 거죠.” 하지만 친구들과 가족들이 그의 긍정적인 변화를 알아채기 시작하면서, 동시에 위험한 불씨도 자라났습니다. 자이드는 만약 가족들이 이러한 변화의 진짜 이유를 알게 된다면, 이슬람을 배신했다는 사실이 가문에 씻을 수 없는 거대한 수치가 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슬람 사회에서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대죄였습니다. 자이드는 설명합니다. “사촌들에게 예수님에 대해 전했는데, 감사하게도 그중 두 명이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어요. 물론 제가 기쁜 소식을 전한다고 해서 모두가 받아들인 건 아니었죠. 새로운 진리는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환영받기 힘든 법이니까요… 특히 제 아버지에게는 더더욱 그랬습니다.” 그리고 결국, 자이드는 집에서 쫓겨나 거리로 내몰리는 청천벽력 같은 일을 겪게 되었습니다. “집에 성경책을 가져와 제 방에 두었었거든요. 어느 날 아버지가 그걸 보시고는 대뜸 화를 내시며 ‘침대 위에 왜 이런 책이 있냐, 네가 왜 이런 걸 모으고 다니냐’고 따져 물으셨습니다. 순간 숨이 턱 막혔지만, 저는 도망치지 않고 솔직하게 말씀드렸어요. 저 이제 기독교인이 되었고, 예수님이 진짜 하나님이시며, 이슬람을 떠났다고요.” 그 용기 있는 고백의 대가는 너무나 가혹했습니다. 자이드의 아버지는 뼛속까지 철저한 무슬림이었습니다. 그에게 이슬람을 버린 아들은 더 이상 아들이 아니라, 처단해야 마땅한 이교도에 불과했습니다. 자이드가 아버지에게 모진 매질을 당하고 쫓겨나는 비극적인 상황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거리에서 하나님의 채우심을 경험하며 신앙을 고백하는 눈물겨운 대목입니다. 가문의 명예를 목숨보다 귀하게 여기는 이슬람 문화권의 비정함과, 그 속에서 성경 말씀을 등불 삼아 버텨내는 자이드의 굳건한 믿음이 한국어 독자들에게 날것 그대로의 감동으로 전해지도록 다듬었습니다. “아버지는 저를 사정없이 때리셨습니다.” 자이드가 말합니다. “온몸이 피멍투성이가 되었죠. 아버지가 제게 손을 대신 건 태어나서 정말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평생 한 번도 본 적 없는 낯선 아버지의 얼굴이었어요. 늘 친절하고 다정하셨던 분이었는데, 그날은 완전히 딴사람 같았습니다. 매질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졌고, 결국 저는 이틀 동안 집 안에 갇혀 있어야 했습니다. 나중에 큰형이 겨우 뜯어말리며 중재에 나섰고, 그 길로 저는 집에서 쫓겨났습니다.” 자이드는 정든 집에서 쫓겨났고, 부모님에게 완전히 의절당하고 말았습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제정신이 돌아오면 그때 다시 와라. 그리고 네가 기독교인이 됐다는 소리, 어디 가서 입 밖에도 꺼내지 마라. 우리 가문의 명예를 씻을 수 없는 똥칠을 할 작정이냐? 어떻게 이런 집안 망신이 다 있니.’ 그것이 제가 아버지에게 들은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그 모진 말들은 제 가슴에 평생 지워지지 않을 깊은 상처로 남았습니다.” 그러나 쫓겨나 길거리에서 보낸 추운 밤들은, 역설적이게도 자이드가 새로운 신앙을 증명하고 연단하는 축복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자이드는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결코 저를 혼자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차가운 길 한복판에 저를 버려두지 않으셨어요. 거리에서 며칠을 유랑하며 노숙을 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날은 버려진 모스크(이슬람 성원)에서 밤을 지새웠고, 그다음엔 친구들 집을 전전하다가, 이틀 동안은 먼 친척의 아파트에서 신세를 지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직계 가족 외에는 제가 기독교인이 된 걸 아무도 몰랐기 때문에, 친척 집에서도 의심받지 않고 이틀간 머물 수 있었던 거죠. 그 모진 나날 동안 하나님의 세심한 채우심과 공급하심이 저를 꽉 붙들어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이 모든 고통과 맞바꾸어도 아깝지 않을, 그만 한 가치가 있는 분이라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다행히 자이드는 예전에 자신에게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던 대학 친구 두 명과 극적으로 연락이 닿았습니다. 그들은 뜻을 모아 다른 동네에 함께 살 아파트를 구했습니다. 집도 절도 없던 자이드에게 그것은 그 자체로 거대한 기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제 모든 상황을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제 가슴에 복음을 향한 뜨거운 열정을 부어주시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계속 나아갈 수 있도록 강하게 붙들어 주신 것은 오직 성령님의 능력이었습니다.” 자이드가 말합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라는 성경 구절을 암송하곤 합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오직 그분만을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습니다. 성경은 또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말씀하시잖아요. 그 약속의 말씀이 벼랑 끝에 있던 저를 지탱해 주었고, 오늘날까지 저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고 있습니다. 만약 제가 그분의 말씀을 의지하는 것을 단 한 순간이라도 멈추었다면, 제 영혼은 이미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을 것입니다.” ‘바울이 할 수 있었다면… 저도 할 수 있습니다’ 낯선 이 동네에서 하나님은 자이드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허락해 주셨고, 마침내 그곳의 지하 교회(지역 교회) 공동체와도 연결되게 하셨습니다. 자이드는 감사함으로 당시를 회상합니다. “주님은 제게 필요한 모든 것을 넘치도록 채워주셨습니다. 그곳 교회를 통해 다시 사람들을 섬기기 시작했고, 정말 많은 영혼들을 제자로 길러냈죠. 우리는 주님을 영접한 새 신자들에게 침례를 주었고, 복음에 갈급해 진지하게 진리를 찾는 구도자들을 직접 대면하여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참된 소망을 쫓는 이들과 나란히 서서 눈물과 기쁨으로 제자 양육의 여정을 함께 걸어갔습니다.” 그렇게 한동안 뜨겁게 사역을 이어가던 중, 자이드는 하나님께서 예멘 땅과 그 백성들 사이에서 새롭고 더 거대한 일을 행하려 하신다는 마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자이드는 눈을 빛내며 자신의 비전을 설명합니다. “제 평생의 비전은 사도 바울처럼 사는 것입니다. 바울 역시 지금 제가 처한 환경만큼이나 서슬 퍼런 위험 속에서 믿음을 지켰던 사람입니다. 그는 율법주의자인 바리새인들에게 둘러싸여 고난을 받았고, 저는 지금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게 꽁꽁 둘러싸여 있죠. 하지만 바울은 그 삼엄한 위협 속에서도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완전히 변화시켰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 힘을 힘입어 세상을 어둠에서 빛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저 역시 이 땅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온전히 비추는 거울이 되고 싶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며,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든 거부하든 상관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온 힘을 쏟고 있습니다. 저는 그저 묵묵히 복음의 씨앗을 뿌릴 뿐입니다. 그 씨앗이 떨어질 마음의 밭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하나님이 제게 맡겨주신 사명을 끝까지 다하고 싶습니다.” 자이드는 자신의 삶이 사도 바울의 행적과 참 많이 닮아있다고 느낍니다. 바울 역시 처음에는 그리스도인들을 잔인하게 박해하던 자였으나, 결국에는 자신을 적대시하는 삼엄한 환경 속에서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고 조국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이드가 간절히 걷고자 하는 길입니다. 아무리 혹독한 대가가 따르더라도 고국에 끝까지 남아 동포들을 섬기는 것 말입니다. 자이드는 결연한 의지를 담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이 해냈다면, 그리고 그 역시 저와 똑같이 연약함을 지닌 인간이었다면, 저 역시 기필코 해낼 수 있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이 지금 우리 안에 계시기에, 우리는 이 어두운 땅에서 주변 사람들을 밝히는 빛이 될 수 있습니다.” 자이드는 진심으로 자신의 조국 예멘과 동포들을 사랑합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예멘 땅과 그 백성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예멘 땅에 영적인 대변혁이 일어나기를, 사탄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이 이 나라를 온전히 통치하시기를 기도해 주세요. 저는 제 가족과 형제들, 그리고 사랑하는 이 곁에 끝까지 남을 것입니다. 잠들어 있는 그들의 영혼을 깨우는 게 너무나도 시급합니다. 그들은 지금 지독한 어둠 속에 갇혀 살아가고 있어요. 저는 제 동포들이 복음 안에서 온전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 예멘 땅에는 예수님이 절실히 필요하기에,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평화의 왕이신 주님이 다스리지 않으시면, 이 땅에 진정한 평화란 결코 없습니다.” 남은 자들을 강하게 하소서 오픈도어선교회 현지 동역자들의 도움으로, 자이드는 새 신자들이 매일 함께 모여 삶을 나누고 훈련받을 수 있는 ‘현지 제자 양육의 집’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의 비전은 매일 성경 공부를 열어, 신자들이 남들에게 말 못 할 고민이나 까다로운 신앙적 주제들을 마음 놓고 토론할 수 있는 안전한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즉, 예멘 전역에 가정 교회를 세우고 이끌어갈 영적 리더들을 길러내는 든든한 훈련소인 셈입니다. 자이드는 포부를 밝힙니다. “예멘의 인구는 4,000만 명에 달합니다. 제 비전은 이 땅에 생명력 넘치는 가정 교회 40,000개를 세우는 것입니다. 예멘인 1,000명당 가정 교회 한 개씩을 두어, 모든 이들이 믿음의 교제를 누리고 함께 영적으로 성장하는 자리에까지 이르게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자이드와 예멘의 성도들이 이 위대한 비전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사랑 가득한 지원과 기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들은 예멘 땅에 남겨진 자들을 강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교회를 성장시키기 위해, 전 세계 믿음의 공동체(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손을 잡아주어야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자이드는 고백합니다. “얼마 전, 저희가 아주 비밀스럽고 삼엄한 모임을 앞두고 구체적인 기도를 요청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전 세계의 형제자매들이 WhatsApp 음성 메시지로 저희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 주었어요. 모임을 시작하면서 그 기도 녹음본을 틀었는데, 정말 말로 다 할 수 없는 큰 위로와 격려가 되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모인 모든 형제들의 마음이 뜨거워졌죠. 마치 방전되었던 전화기 배터리가 순식간에 100%로 충전되는 것처럼, 영적인 에너지가 가득 채워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때 저희는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우리를 위해 눈물로 기도해 주는 믿음의 동역자들이 전 세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다시 일어설 힘을 얻습니다. 우리가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는 오직 기도뿐입니다.” 자이드는 지금 예멘의 교회들을 성경 속 ‘초대 교회’의 연장선으로 바라봅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목숨을 포함한 모든 것을 걸었던 또 하나의 가정 교회 공동체로 여기는 것입니다. 자이드는 말합니다. “초대 교회를 지키셨던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도 보호해 주시고, 그때와 똑같은 영적 자원을 우리에게 부어주실 줄 믿습니다. 옛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러 거친 세상으로 나아갔을 때, 하나님은 늘 그들과 함께하시며 감당할 능력과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셨습니다. 우리는 이제 가장 어두운 곳으로 걸어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빛입니다. 우리 안에 예수의 빛을 품고 있으니까요. 그러니 우리 안의 빛을 환하게 밝혀 세상 모든 사람이 그 빛을 보게 해야 합니다.” 자이드는 예멘의 다른 사역자들과 지도자들을 위해서도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자이드는 간절히 구합니다. “총칼이 멈추는 전쟁의 종식을 넘어, 이 땅에 영적인 진정한 평화가 임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예수님이 이 예멘 땅의 진정한 왕으로 다스리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눈을 열어주셔서 살아 계신 주님을 바라보게 하소서. 주님께서 친히 그분의 일을 멈추지 않고 이어가시며, 제게 맡겨주신 이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날마다 새 힘을 공급해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사실, 저도 똑같은 평범한 인간이기에 문득문득 두려움이 밀려오곤 합니다. 왜 안 그렇겠습니까. 하지만 우리가 이런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면, 어둠 속에 갇힌 우리 동포들에게 어떻게 다가갈 수 있겠습니까. 성경 속 제자들 역시 수많은 위험을 기꺼이 감수했습니다. 그들은 모진 박해를 마주했고, 감시당하고, 매 맞고, 결국엔 목숨까지 잃었습니다… 하지만 그분들의 거룩한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까지 전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언젠가 비밀경찰이 저를 잡아 가거나, 누군가 제 목숨을 빼앗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제 곁에 함께하실 것입니다.” *보안상의 이유로 이름들이 변경되었습니다. 박해 받는 교회를 위한 후원 계좌 국민은행 029301-04-167093(한국오픈도어선교회) 정기 후원 신청 [바로 가기] — 사진) 예멘 신자 ‘자이드’는 꿈에서 밝은 빛 가운데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2025. 12. 19] 자이드(Zaid)*는 위험 앞에서도 굳건히 서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러분의 기도와 지원이 필요합니다. 자이드는 예멘의 대학생입니다. 이 형제는 보수적인 이슬람 가정에서 자랐는데요. 16세 때 역사와 예언자 무함마드의 삶, 그리고 이슬람이 가르치는 것 사이에서 수많은 모순을 깨닫고 무신론자가 되었습니다. 마음의 공허함을 채우려다 마약 중독에 빠지기도 했었는데, 꿈속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자이드는 소셜 미디어와 온라인 사역을 통해 예수님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며 먼저 연락을 해왔습니다. 이 형제는 믿게 되었고, WhatsApp을 통해 오픈도어선교회 동역자들로부터 제자 양육을 받았으며, 침례를 받기로 결심했습니다. 놀라운 침례식을 통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을 대면해 만난 후, 자이드는 다른 이들을 제자로 삼고 주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이 형제가 숨겨두었던 성경을 발견하면서 여정은 험난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이드의 믿음과 결단은 이 형제가 고국에 머물게 하며, 극단주의자들이 이슬람에서 개종한 기독교인을 붙잡고, 감금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는 곳에서 기쁜 소식을 전파하도록 붙들어 주고 있습니다. — 자이드*가 집에서 쫓겨난 날은 쌀쌀한 저녁이었습니다. 길을 잃고 혼란스러운 채로 예멘의 어느 도시 거리를 배회했습니다. 마음속에 의문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이 새로운 믿음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 걸까? 내가 겪고 있는 이 모든 일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걸까?’ 가족의 집에서 강제로 떠나야 했던 이유는 바로 새로운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자이드에게 오직 사랑만을 보여주었던 아버지가 때린 이유도, 집 안에 이틀 동안 감금되었다가 거리로 쫓겨난 이유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거부당한 이유도 바로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자이드의 새로운 믿음은 그의 모든 것을 앗아갔습니다. “그날 밤을 거리에서 보냈습니다.” 형제는 회상합니다. “그곳에서 잠을 잤어요. 갈 곳도 없었고, 해결책을 찾을 만큼 정신이 맑지도 않았습니다.” 의구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자 자이드는 추위에 몸을 떨었습니다. 하지만 그 혼란 속에서, 정서적·육체적 황폐함을 깨뜨리는 선명한 생각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그래, 예수님을 아는 것은 내가 겪고 있는 이 모든 일보다 더 가치 있어.’ 자이드의 주님과의 동행은 결코 쉽거나 안전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대담한 예멘 형제의 고백을 듣는 것은, 자신의 믿음을 위해 모든 것을 건 수백만 명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상정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한 편의 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이드는 예멘의 보수적인 이슬람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가족들이 기도하고 예배하는 모습을 봤어요.” 그가 말합니다. “기도는 중요하고 무거운 의무였어요.” 매일의 기도는 책무였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가 오직 그 의무를 얼마나 잘 이행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배웠습니다. “기도해야만 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널 사랑하지 않을 것이고, 결국 불 속에 들어가 구이 기계 위의 닭처럼 타버리게 될 것이라고 배웠어요.” 형제는 자신이 자라온 환경을 돌아보며 말합니다. “이슬람과 무함마드는 삶의 전부였어요.” 하나님께 거부당하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습니다. “자라면서 정기적으로 모스크에 가고 기도하는 일을 거르지 않았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모든 가르침과 의식을 따랐죠.” 형제는 말합니다. “하나님이 저를 사랑하시고 기뻐하셔서 사후 세계를 보장받고 싶었거든요. 이슬람 학문에 몰두했고 쿠란의 일부를 읽고 외웠어요. 온라인에서 이슬람을 온 마음으로 변호했고 사람들이 이슬람만이 유일한 길임을 알기를 원했어요.”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온전히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죠.” 의구심을 품기 시작한 것은 16세 때였습니다. 어느 날 밤, 기도를 마치고 생각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내가 천국에 갈 수 있을까? 보장된 걸까?’ 종교의 모든 계율과 금기 사항을 따르는 실천적인 무슬림으로서 당연히 들어갈 수 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아주 작은 실수 하나로도 하나님이 저를 미워하실 수 있고, 이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단 한 번의 미끄러짐으로도 그분은 제가 낙원에 들어가는 것을 막으실 수 있다고요.” 자이드가 별이 빛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더 많은 의문과 생각들이 떠올랐습니다. ‘이 보복하시는 하나님은 왜 나를 창조하셨을까?’ ‘그저 내가 여기 서서 끊임없이 이 의식들과 기도를 반복하다가 어느 날 죽기를 바라시는 걸까?’ 죽음 이후의 좋은 삶에 대한 보장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 생각때문에 괴로웠습니다. “뼛속까지 실천하며 자라온 이 종교를 포함해 모든 것이 의심스러웠어요.” 형제는 자신이 들어본 다른 신앙과 종교들을 탐구하고 자신의 믿음을 시험하기 시작했습니다. 천천히, 자이드가 더 깊이 파고들수록 자신의 종교에서 결함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자라면서 배운 많은 생각들이 더 이상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더라고요.” 그가 설명합니다. “예언자의 삶, 이슬람의 역사… 무언가 잘못되어 있었어요. 쿠란을 읽는 것을 멈췄고, 하루 다섯 번의 기도를 중단했어요… 그러고 나니까,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라는 무서운 생각이 밀려와 괴로웠어요.” 마침내 자이드는 자신이 이슬람을 떠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였습니다… 평생 자신과 가족의 삶에서 종교가 전부였기에, 이를 인정하기까지 정말 쉽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가슴 깊은 곳에는 커다란 공허함이 남았습니다. “맹목적으로 따라야 했던 의무가 없어졌으니 가슴에 얹혀있던 무거운 바위가 내려간 듯 홀가분했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혼란스러웠죠.” 그렇게 길을 잃은 자이드 형제는 참된 진리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커져가는 공허함 자이드는 어딘가에 진짜 ‘진리’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것을 찾고 싶었고 찾아야만 했습니다. “온라인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소셜 미디어를 통해 연구하고 토론했어요.” 이전에는 온라인 공간을 이슬람을 변호하는 데 사용했다면, 이제는 그 반대편에 서 있었습니다. “목적이 바뀌었죠. 저처럼 사람들이 이슬람을 떠나도록 설득하고 싶었어요. 저와 같은 무신론자들과 이야기하고 싶었고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었죠.” 6개월 동안 탐색한 후, 공허함은 더욱 커졌습니다. “외로웠어요.” 그가 말합니다. “대화할 수 있는 사람도,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사람도 없었으니까요.” 가족에게는 자신의 생각과 고충을 말할 수 없었고,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는 단 한 명뿐이었는데 그 친구마저 늘 곁에 있지는 못했습니다. “그 때는 힘들었어요.” 형제는 기억합니다. “유대교에 대해 조금 읽다가, 기독교에 대해 조금, 그다음엔 무신론에 대해 조금 읽기 시작했습니다. 페이스북, 유튜브, 검색 엔진을 뒤지며… 답을 찾아야 했습니다. 이 커져가는 공허함을 채울 수 있는 무언가를요.” 자이드는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다양한 것들에 손을 댔습니다. “캇(khat, 예멘에서 널리 사용되며 합법적인 경미한 흥분제 마약)을 사용하기 시작했죠.” “점차 나태함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목적의식이 없었어요. 나쁜 말을 쓰고, 나쁜 무리와 어울렸으며, 공허함은 커져만 갔어요. 정신적으로 약해졌어요. 마약을 사용할 뿐만 아니라 밀수하기 시작했습니다. 완전히 길을 잃었어요.” 그러던 중 자이드에게 훨씬 더 큰 상실의 아픔이 찾아왔습니다. 예멘을 황폐화시킨 내전 통에 가장 친한 친구를 잃은 것입니다. 이 친구는 자이드와 함께 일하며 그의 수많은 고민을 들어주던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한편으로는 마약을 권했던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친구가 떠나자 자이드가 느끼는 외로움과 고립감은 극에 달했습니다. 자이드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합니다.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어요. 온몸의 진이 다 빠져나가고 속이 텅 빈 것 같았죠. 그 끔찍한 재앙과 고난 한가운데 내 곁엔 아무도 없었어요. 그저 고통과 걱정을 짊어진 채 홀로 멍하니 앉아 있을 뿐이었습니다.” 자이드는 진리를 찾기 위한 탐색을 계속 이어갔지만, 삶은 늘 공허했고 날이 갈수록 절망만 깊어졌습니다. 바로 그때, 예수님이 그를 찾아오셨습니다. — 사진) 자연 속에 있는 자이드 — 정원 속의 빛
가장 친한 친구를 잃은 슬픔 속에서도 자이드는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여정을 멈추지 않았고, 기독교에 대해 새로운 사실들을 배워 나갔습니다. 그동안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놀라운 내용들이었습니다. 자이드는 설명합니다. “전에는 그리스도인에 대해 엄청난 편견을 가지고 있었어요. 제게 기독교인은 그저 삼위일체를 믿고 돼지고기를 먹는 이교도이자, 한마디로 고약한 원수일 뿐이었죠. 그런데 온라인에서 마주한 그들의 이야기는 뜻밖에도 제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처음부터 마음을 열었던 것은 아닙니다. 자이드는 말합니다. “사실 처음에는 그 사람들을 공격하려고 기독교 관련 글들을 읽기 시작했어요. 어떻게든 온라인 토론에서 이겨보려고 애를 썼죠. 그러다 논리로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나 보려고 일부러 심한 욕설을 퍼붓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제 마음을 흔든 건 그들의 ‘사랑’이었어요. 그토록 모욕을 당하면서도 저를 향해 맞받아 욕하지 않고 사랑으로 대하더라고요!” 평생 예멘에서만 살아온 자이드는 이슬람 경전인 쿠란에서 예수님을 그저 한 명의 예언자로 언급한 것 외에는 예수님에 대해 아는 게 없었습니다. 당연히 살면서 진짜 그리스도인을 만나본 적도 없었기에, 자신이 기독교 신앙에 대해 무지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그때부터 조금씩 태도가 바뀌었어요. 말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이해하고 싶어서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자신의 형상대로 우리를 창조하셨으며, 우리를 살리려고 아들까지 보내어 죽게 하셨다는 이야기는 제게 완전히 새로운 충격이자 진리로 다가왔습니다.” 결국 자이드는 자신이 읽고 듣던 이 새로운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기로 결심했습니다. “어느 날 밤, 잠들기 전에 간절히 기도를 드렸어요. ‘하나님, 만약 당신이 정말 기독교 안에 계신다면 제게 알려주세요. 그럼 제가 당신께로 가겠습니다. 정말 살아 계신다면 지금 어디에 계시는지 말씀해 주세요. 제발 저를 구원해 주세요’라고요.” 그날 밤을 시작으로 몇 날 밤 동안 자이드는 연달아 똑같은 꿈을 꾸었습니다. “푸르고 울창한 정원에 서 있었는데, 어디선가 강렬한 빛이 비추었어요. 그 빛이 내게 점점 다가오더니 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내가 아흔아홉 마리를 남겨두고 너를 찾아왔다’고요. 너무 놀라 꿈에서 깼습니다.” 자이드는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한 꿈을 회상하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화면을 확인하려고 전화기를 켜자마자 사진 한 장이 눈에 들어왔어요. 푸르고 울창한 정원에서 양들에게 둘러싸여 계신 예수님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진 밑에는 꿈에서 들었던 것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문구가 적혀 있었죠. ‘그가 아흔아홉 마리를 남겨두고 너를 찾아왔다’고요. 그 순간 정말 온 세상이 우뚝 멈춰 버린 것만 같았습니다.” 자이드는 자신이 간절히 구했던 확신을 마침내 얻었음을 알았습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 밀려왔어요. 내가 드디어 하나님을 만난 거구나 싶었죠! 그 순간 기독교의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시며,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자이드와 주님의 동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세상 한복판’에서 받은 침례
자이드는 예수님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습니다. 자이드는 당시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합니다. “그길로 곧장 성경 앱을 다운받아서 읽기 시작했어요. 하나님이 저 같은 사람에게 직접 자신을 보여주신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깊은 어둠 속으로 끝없이 추락하던 저를 건져주신 거예요. 아무것도 믿지 못하던 방황의 길에서 저를 끄집어내, 그분의 따뜻한 빛 가운데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 꿈은 무신론자로 살던 제 인생의 완벽한 전환점이었고, 저는 그렇게 비로소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으로서 새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개념은 자이드가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평생 왜곡된 하나님 상(像)을 주입받으며 자랐기에, 자신이 기존에 알던 신관을 완전히 버리고 하나님의 참모습을 새로이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자이드는 고백합니다. “영적인 갈급함에 목이 말랐습니다. 더 배우고 깊이 알고 싶었지만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온라인을 통해 몇몇 사람들에게 연락을 취해 보았습니다.” 아시다시피 예멘에는 예수님에 대해 마음 편히 배울 수 있는 공개적인 교회가 단 한 곳도 없습니다. 자이드는 설명합니다.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직접 만나 모임을 가질 수 있는 형편이 전혀 안 됐어요. 모든 소통은 오직 온라인으로만 이루어졌죠. 그렇게 일 년 반 동안 제자 양육 과정을 거치면서 예수님을 향한 믿음이 조금씩 자라났습니다. 당시 WhatsApp(모바일 메신저)을 통해 ‘알라’라는 이름의 선교회 동역자 형제님과 꾸준히 메시지를 주고받았는데요. 그분을 직접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어떻게 생기셨는지도 몰랐고, 심지어 목소리조차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혹시 모를 보안 위험 때문에 오직 텍스트로만 대화를 나눠야 했거든요. 하지만 그런 제약 속에서도 영적인 갈망을 채울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흡수하고 싶었습니다.” 새로운 신앙 안에서 제자 양육을 받으며 자이드는 자신이 깊이 읽고 묵상하던 말씀에 순종하여, 침례를 받기로 결심했습니다. 자이드는 당시를 이렇게 떠올립니다. “알라 형제님이 침례 일정을 잡아주겠다고 했어요. 제 결심이 정말 확고하다면, 제가 있는 곳 근처에 사는 한 형제님을 보내 침례를 받게 해주겠다고 하더군요. 당연히 제 마음은 확고했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고 싶었으니까요.” 당시 자이드가 침례를 받는다는 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천만한 일이었습니다. 만약 자이드나 그를 만나러 온 남자가 발각되기라도 하면 감옥에 갇히는 것은 물론, 심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이드에게는 예수님을 향한 사랑과 헌신이 그 어떤 두려움보다 훨씬 컸습니다. 자이드는 그 긴박했던 날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길거리에서 [알라 형제님이 보낸] 그분을 만났습니다. 가볍게 악수를 나누고 우리는 함께 공공 수영장으로 걸어갔어요. 하필 그날따라 수영장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죠. 우리는 조심스럽게 수영장 모퉁이에 있는 계단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분은 [제 신앙을 확인하는] 두 가지 짧은 질문을 던진 뒤, 제게 침례를 주었습니다. 물속에 완전히 들어갔다 나오자마자 우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즉시 그 자리를 떠났어요. 그날 이후로 그분을 다시는 보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제가 예멘에서 다른 그리스도인을 눈앞에서 직접 마주한 생애 첫 순간이었습니다.” 그날 이후로도 자이드는 성경 공부를 멈추지 않았고, 성령께서 자신을 인도하시며 믿음을 자라나게 해주시기를 간절히 의지했습니다. 자이드는 말합니다. “이 성령님께서, 무력한 제가 예멘 땅에서 기적 같은 삶을 살아가게 하신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나라의 많은 젊은이들이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면,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 예멘을 떠나곤 합니다. 저는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가요! 하지만 저는 떠나고 싶지 않았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끝까지 이곳에 남아 제 동포들을 섬기고 싶습니다.” 자이드의 삶에 일어난 변화는 누가 봐도 분명했습니다. 자이드는 고백합니다. “저는 주님 안에서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났습니다. 하나님은 저를 지독한 중독에서 해방시켜 주셨고 깨끗하게 씻어주셨어요. 마음속에 드는 악한 생각들과 싸워 이길 힘을 주셨고, 늘 피폐했던 정신 건강도 훨씬 좋아졌습니다. 주님과 더 깊은 시간을 보낼수록 그분은 저를 매일 새롭게 변화시켜 가고 계십니다.” 그러나 이 척박한 예멘 땅에서, 자이드가 마주해야 할 위험은 이제 막 시작된 것에 불과했습니다.
가문의 수치, 가족에게 멸시받다
자이드가 본격적으로 사역을 시작하자, 영적인 공격이 거세게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자이드는 말합니다. “주변 사람들과 갈등이 생기는 등 온갖 어려움이 닥쳤지만, 신기하게도 성경을 읽을 때면 늘 말할 수 없는 평안함을 느꼈어요. 예수님께서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말씀하시며, 걱정하지 말고 나를 믿으라고 약속해 주셨거든요. 고통과 걱정, 수많은 문제 속에서도… 저는 오직 그분만을 신뢰했습니다.” 자이드는 가족들에게 자신이 이슬람을 떠났다는 사실을 비밀로 했지만, 가족들은 그의 눈에 띄는 변화를 금방 눈치챘습니다. “가족들이 제게 묻곤 했어요. ‘너 담배 끊었니? 요즘은 왜 캇(마약성 식물)도 안 씹는 거냐? 정말 다 끊은 거야?’라고요. 주님 안에서 정신이 맑아지고 삶이 훨씬 성숙해지니, 주변 사람들이 먼저 알아차린 거죠.” 하지만 친구들과 가족들이 그의 긍정적인 변화를 알아채기 시작하면서, 동시에 위험한 불씨도 자라났습니다. 자이드는 만약 가족들이 이러한 변화의 진짜 이유를 알게 된다면, 이슬람을 배신했다는 사실이 가문에 씻을 수 없는 거대한 수치가 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슬람 사회에서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대죄였습니다. 자이드는 설명합니다. “사촌들에게 예수님에 대해 전했는데, 감사하게도 그중 두 명이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어요. 물론 제가 기쁜 소식을 전한다고 해서 모두가 받아들인 건 아니었죠. 새로운 진리는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환영받기 힘든 법이니까요… 특히 제 아버지에게는 더더욱 그랬습니다.” 그리고 결국, 자이드는 집에서 쫓겨나 거리로 내몰리는 청천벽력 같은 일을 겪게 되었습니다. “집에 성경책을 가져와 제 방에 두었었거든요. 어느 날 아버지가 그걸 보시고는 대뜸 화를 내시며 ‘침대 위에 왜 이런 책이 있냐, 네가 왜 이런 걸 모으고 다니냐’고 따져 물으셨습니다. 순간 숨이 턱 막혔지만, 저는 도망치지 않고 솔직하게 말씀드렸어요. 저 이제 기독교인이 되었고, 예수님이 진짜 하나님이시며, 이슬람을 떠났다고요.” 그 용기 있는 고백의 대가는 너무나 가혹했습니다. 자이드의 아버지는 뼛속까지 철저한 무슬림이었습니다. 그에게 이슬람을 버린 아들은 더 이상 아들이 아니라, 처단해야 마땅한 이교도에 불과했습니다. 자이드가 아버지에게 모진 매질을 당하고 쫓겨나는 비극적인 상황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거리에서 하나님의 채우심을 경험하며 신앙을 고백하는 눈물겨운 대목입니다. 가문의 명예를 목숨보다 귀하게 여기는 이슬람 문화권의 비정함과, 그 속에서 성경 말씀을 등불 삼아 버텨내는 자이드의 굳건한 믿음이 한국어 독자들에게 날것 그대로의 감동으로 전해지도록 다듬었습니다. “아버지는 저를 사정없이 때리셨습니다.” 자이드가 말합니다. “온몸이 피멍투성이가 되었죠. 아버지가 제게 손을 대신 건 태어나서 정말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평생 한 번도 본 적 없는 낯선 아버지의 얼굴이었어요. 늘 친절하고 다정하셨던 분이었는데, 그날은 완전히 딴사람 같았습니다. 매질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졌고, 결국 저는 이틀 동안 집 안에 갇혀 있어야 했습니다. 나중에 큰형이 겨우 뜯어말리며 중재에 나섰고, 그 길로 저는 집에서 쫓겨났습니다.” 자이드는 정든 집에서 쫓겨났고, 부모님에게 완전히 의절당하고 말았습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제정신이 돌아오면 그때 다시 와라. 그리고 네가 기독교인이 됐다는 소리, 어디 가서 입 밖에도 꺼내지 마라. 우리 가문의 명예를 씻을 수 없는 똥칠을 할 작정이냐? 어떻게 이런 집안 망신이 다 있니.’ 그것이 제가 아버지에게 들은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그 모진 말들은 제 가슴에 평생 지워지지 않을 깊은 상처로 남았습니다.” 그러나 쫓겨나 길거리에서 보낸 추운 밤들은, 역설적이게도 자이드가 새로운 신앙을 증명하고 연단하는 축복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자이드는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결코 저를 혼자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차가운 길 한복판에 저를 버려두지 않으셨어요. 거리에서 며칠을 유랑하며 노숙을 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날은 버려진 모스크(이슬람 성원)에서 밤을 지새웠고, 그다음엔 친구들 집을 전전하다가, 이틀 동안은 먼 친척의 아파트에서 신세를 지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직계 가족 외에는 제가 기독교인이 된 걸 아무도 몰랐기 때문에, 친척 집에서도 의심받지 않고 이틀간 머물 수 있었던 거죠. 그 모진 나날 동안 하나님의 세심한 채우심과 공급하심이 저를 꽉 붙들어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이 모든 고통과 맞바꾸어도 아깝지 않을, 그만 한 가치가 있는 분이라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다행히 자이드는 예전에 자신에게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던 대학 친구 두 명과 극적으로 연락이 닿았습니다. 그들은 뜻을 모아 다른 동네에 함께 살 아파트를 구했습니다. 집도 절도 없던 자이드에게 그것은 그 자체로 거대한 기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제 모든 상황을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제 가슴에 복음을 향한 뜨거운 열정을 부어주시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계속 나아갈 수 있도록 강하게 붙들어 주신 것은 오직 성령님의 능력이었습니다.” 자이드가 말합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라는 성경 구절을 암송하곤 합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오직 그분만을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습니다. 성경은 또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말씀하시잖아요. 그 약속의 말씀이 벼랑 끝에 있던 저를 지탱해 주었고, 오늘날까지 저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고 있습니다. 만약 제가 그분의 말씀을 의지하는 것을 단 한 순간이라도 멈추었다면, 제 영혼은 이미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을 것입니다.” — ‘바울이 할 수 있었다면… 저도 할 수 있습니다’
낯선 이 동네에서 하나님은 자이드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허락해 주셨고, 마침내 그곳의 지하 교회(지역 교회) 공동체와도 연결되게 하셨습니다. 자이드는 감사함으로 당시를 회상합니다. “주님은 제게 필요한 모든 것을 넘치도록 채워주셨습니다. 그곳 교회를 통해 다시 사람들을 섬기기 시작했고, 정말 많은 영혼들을 제자로 길러냈죠. 우리는 주님을 영접한 새 신자들에게 침례를 주었고, 복음에 갈급해 진지하게 진리를 찾는 구도자들을 직접 대면하여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참된 소망을 쫓는 이들과 나란히 서서 눈물과 기쁨으로 제자 양육의 여정을 함께 걸어갔습니다.” 그렇게 한동안 뜨겁게 사역을 이어가던 중, 자이드는 하나님께서 예멘 땅과 그 백성들 사이에서 새롭고 더 거대한 일을 행하려 하신다는 마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자이드는 눈을 빛내며 자신의 비전을 설명합니다. “제 평생의 비전은 사도 바울처럼 사는 것입니다. 바울 역시 지금 제가 처한 환경만큼이나 서슬 퍼런 위험 속에서 믿음을 지켰던 사람입니다. 그는 율법주의자인 바리새인들에게 둘러싸여 고난을 받았고, 저는 지금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게 꽁꽁 둘러싸여 있죠. 하지만 바울은 그 삼엄한 위협 속에서도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완전히 변화시켰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 힘을 힘입어 세상을 어둠에서 빛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저 역시 이 땅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온전히 비추는 거울이 되고 싶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며,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든 거부하든 상관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온 힘을 쏟고 있습니다. 저는 그저 묵묵히 복음의 씨앗을 뿌릴 뿐입니다. 그 씨앗이 떨어질 마음의 밭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하나님이 제게 맡겨주신 사명을 끝까지 다하고 싶습니다.”
자이드는 자신의 삶이 사도 바울의 행적과 참 많이 닮아있다고 느낍니다. 바울 역시 처음에는 그리스도인들을 잔인하게 박해하던 자였으나, 결국에는 자신을 적대시하는 삼엄한 환경 속에서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고 조국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이드가 간절히 걷고자 하는 길입니다. 아무리 혹독한 대가가 따르더라도 고국에 끝까지 남아 동포들을 섬기는 것 말입니다. 자이드는 결연한 의지를 담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이 해냈다면, 그리고 그 역시 저와 똑같이 연약함을 지닌 인간이었다면, 저 역시 기필코 해낼 수 있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이 지금 우리 안에 계시기에, 우리는 이 어두운 땅에서 주변 사람들을 밝히는 빛이 될 수 있습니다.” 자이드는 진심으로 자신의 조국 예멘과 동포들을 사랑합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예멘 땅과 그 백성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예멘 땅에 영적인 대변혁이 일어나기를, 사탄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이 이 나라를 온전히 통치하시기를 기도해 주세요. 저는 제 가족과 형제들, 그리고 사랑하는 이 곁에 끝까지 남을 것입니다. 잠들어 있는 그들의 영혼을 깨우는 게 너무나도 시급합니다. 그들은 지금 지독한 어둠 속에 갇혀 살아가고 있어요. 저는 제 동포들이 복음 안에서 온전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 예멘 땅에는 예수님이 절실히 필요하기에,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평화의 왕이신 주님이 다스리지 않으시면, 이 땅에 진정한 평화란 결코 없습니다.” — 남은 자들을 강하게 하소서
오픈도어선교회 현지 동역자들의 도움으로, 자이드는 새 신자들이 매일 함께 모여 삶을 나누고 훈련받을 수 있는 ‘현지 제자 양육의 집’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의 비전은 매일 성경 공부를 열어, 신자들이 남들에게 말 못 할 고민이나 까다로운 신앙적 주제들을 마음 놓고 토론할 수 있는 안전한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즉, 예멘 전역에 가정 교회를 세우고 이끌어갈 영적 리더들을 길러내는 든든한 훈련소인 셈입니다. 자이드는 포부를 밝힙니다. “예멘의 인구는 4,000만 명에 달합니다. 제 비전은 이 땅에 생명력 넘치는 가정 교회 40,000개를 세우는 것입니다. 예멘인 1,000명당 가정 교회 한 개씩을 두어, 모든 이들이 믿음의 교제를 누리고 함께 영적으로 성장하는 자리에까지 이르게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자이드와 예멘의 성도들이 이 위대한 비전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사랑 가득한 지원과 기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들은 예멘 땅에 남겨진 자들을 강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교회를 성장시키기 위해, 전 세계 믿음의 공동체(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손을 잡아주어야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자이드는 고백합니다. “얼마 전, 저희가 아주 비밀스럽고 삼엄한 모임을 앞두고 구체적인 기도를 요청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전 세계의 형제자매들이 WhatsApp 음성 메시지로 저희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 주었어요. 모임을 시작하면서 그 기도 녹음본을 틀었는데, 정말 말로 다 할 수 없는 큰 위로와 격려가 되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모인 모든 형제들의 마음이 뜨거워졌죠. 마치 방전되었던 전화기 배터리가 순식간에 100%로 충전되는 것처럼, 영적인 에너지가 가득 채워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때 저희는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우리를 위해 눈물로 기도해 주는 믿음의 동역자들이 전 세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다시 일어설 힘을 얻습니다. 우리가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는 오직 기도뿐입니다.” 자이드는 지금 예멘의 교회들을 성경 속 ‘초대 교회’의 연장선으로 바라봅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목숨을 포함한 모든 것을 걸었던 또 하나의 가정 교회 공동체로 여기는 것입니다. 자이드는 말합니다. “초대 교회를 지키셨던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도 보호해 주시고, 그때와 똑같은 영적 자원을 우리에게 부어주실 줄 믿습니다. 옛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러 거친 세상으로 나아갔을 때, 하나님은 늘 그들과 함께하시며 감당할 능력과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셨습니다. 우리는 이제 가장 어두운 곳으로 걸어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빛입니다. 우리 안에 예수의 빛을 품고 있으니까요. 그러니 우리 안의 빛을 환하게 밝혀 세상 모든 사람이 그 빛을 보게 해야 합니다.” 자이드는 예멘의 다른 사역자들과 지도자들을 위해서도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자이드는 간절히 구합니다. “총칼이 멈추는 전쟁의 종식을 넘어, 이 땅에 영적인 진정한 평화가 임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예수님이 이 예멘 땅의 진정한 왕으로 다스리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눈을 열어주셔서 살아 계신 주님을 바라보게 하소서. 주님께서 친히 그분의 일을 멈추지 않고 이어가시며, 제게 맡겨주신 이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날마다 새 힘을 공급해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사실, 저도 똑같은 평범한 인간이기에 문득문득 두려움이 밀려오곤 합니다. 왜 안 그렇겠습니까. 하지만 우리가 이런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면, 어둠 속에 갇힌 우리 동포들에게 어떻게 다가갈 수 있겠습니까. 성경 속 제자들 역시 수많은 위험을 기꺼이 감수했습니다. 그들은 모진 박해를 마주했고, 감시당하고, 매 맞고, 결국엔 목숨까지 잃었습니다… 하지만 그분들의 거룩한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까지 전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언젠가 비밀경찰이 저를 잡아 가거나, 누군가 제 목숨을 빼앗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제 곁에 함께하실 것입니다.”
*보안상의 이유로 이름들이 변경되었습니다.
— 박해 받는 교회를 위한 후원 계좌 국민은행 029301-04-167093(한국오픈도어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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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예멘 신자 ‘자이드’는 꿈에서 밝은 빛 가운데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2025. 12. 19] 자이드(Zaid)*는 위험 앞에서도 굳건히 서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러분의 기도와 지원이 필요합니다. 자이드는 예멘의 대학생입니다. 이 형제는 보수적인 이슬람 가정에서 자랐는데요. 16세 때 역사와 예언자 무함마드의 삶, 그리고 이슬람이 가르치는 것 사이에서 수많은 모순을 깨닫고 무신론자가 되었습니다. 마음의 공허함을 채우려다 마약 중독에 빠지기도 했었는데, 꿈속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자이드는 소셜 미디어와 온라인 사역을 통해 예수님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며 먼저 연락을 해왔습니다. 이 형제는 믿게 되었고, WhatsApp을 통해 오픈도어선교회 동역자들로부터 제자 양육을 받았으며, 침례를 받기로 결심했습니다. 놀라운 침례식을 통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을 대면해 만난 후, 자이드는 다른 이들을 제자로 삼고 주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이 형제가 숨겨두었던 성경을 발견하면서 여정은 험난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이드의 믿음과 결단은 이 형제가 고국에 머물게 하며, 극단주의자들이 이슬람에서 개종한 기독교인을 붙잡고, 감금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는 곳에서 기쁜 소식을 전파하도록 붙들어 주고 있습니다.
자이드*가 집에서 쫓겨난 날은 쌀쌀한 저녁이었습니다. 길을 잃고 혼란스러운 채로 예멘의 어느 도시 거리를 배회했습니다. 마음속에 의문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이 새로운 믿음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 걸까? 내가 겪고 있는 이 모든 일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걸까?’ 가족의 집에서 강제로 떠나야 했던 이유는 바로 새로운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자이드에게 오직 사랑만을 보여주었던 아버지가 때린 이유도, 집 안에 이틀 동안 감금되었다가 거리로 쫓겨난 이유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거부당한 이유도 바로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자이드의 새로운 믿음은 그의 모든 것을 앗아갔습니다. “그날 밤을 거리에서 보냈습니다.” 형제는 회상합니다. “그곳에서 잠을 잤어요. 갈 곳도 없었고, 해결책을 찾을 만큼 정신이 맑지도 않았습니다.” 의구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자 자이드는 추위에 몸을 떨었습니다. 하지만 그 혼란 속에서, 정서적·육체적 황폐함을 깨뜨리는 선명한 생각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그래, 예수님을 아는 것은 내가 겪고 있는 이 모든 일보다 더 가치 있어.’ 자이드의 주님과의 동행은 결코 쉽거나 안전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대담한 예멘 형제의 고백을 듣는 것은, 자신의 믿음을 위해 모든 것을 건 수백만 명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상정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한 편의 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이드는 예멘의 보수적인 이슬람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가족들이 기도하고 예배하는 모습을 봤어요.” 그가 말합니다. “기도는 중요하고 무거운 의무였어요.” 매일의 기도는 책무였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가 오직 그 의무를 얼마나 잘 이행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배웠습니다. “기도해야만 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널 사랑하지 않을 것이고, 결국 불 속에 들어가 구이 기계 위의 닭처럼 타버리게 될 것이라고 배웠어요.” 형제는 자신이 자라온 환경을 돌아보며 말합니다. “이슬람과 무함마드는 삶의 전부였어요.” 하나님께 거부당하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습니다. “자라면서 정기적으로 모스크에 가고 기도하는 일을 거르지 않았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모든 가르침과 의식을 따랐죠.” 형제는 말합니다. “하나님이 저를 사랑하시고 기뻐하셔서 사후 세계를 보장받고 싶었거든요. 이슬람 학문에 몰두했고 쿠란의 일부를 읽고 외웠어요. 온라인에서 이슬람을 온 마음으로 변호했고 사람들이 이슬람만이 유일한 길임을 알기를 원했어요.”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온전히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죠.” 의구심을 품기 시작한 것은 16세 때였습니다. 어느 날 밤, 기도를 마치고 생각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내가 천국에 갈 수 있을까? 보장된 걸까?’ 종교의 모든 계율과 금기 사항을 따르는 실천적인 무슬림으로서 당연히 들어갈 수 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아주 작은 실수 하나로도 하나님이 저를 미워하실 수 있고, 이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단 한 번의 미끄러짐으로도 그분은 제가 낙원에 들어가는 것을 막으실 수 있다고요.” 자이드가 별이 빛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더 많은 의문과 생각들이 떠올랐습니다. ‘이 보복하시는 하나님은 왜 나를 창조하셨을까?’ ‘그저 내가 여기 서서 끊임없이 이 의식들과 기도를 반복하다가 어느 날 죽기를 바라시는 걸까?’ 죽음 이후의 좋은 삶에 대한 보장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 생각때문에 괴로웠습니다. “뼛속까지 실천하며 자라온 이 종교를 포함해 모든 것이 의심스러웠어요.” 형제는 자신이 들어본 다른 신앙과 종교들을 탐구하고 자신의 믿음을 시험하기 시작했습니다. 천천히, 자이드가 더 깊이 파고들수록 자신의 종교에서 결함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자라면서 배운 많은 생각들이 더 이상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더라고요.” 그가 설명합니다. “예언자의 삶, 이슬람의 역사… 무언가 잘못되어 있었어요. 쿠란을 읽는 것을 멈췄고, 하루 다섯 번의 기도를 중단했어요… 그러고 나니까,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라는 무서운 생각이 밀려와 괴로웠어요.” 마침내 자이드는 자신이 이슬람을 떠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였습니다… 평생 자신과 가족의 삶에서 종교가 전부였기에, 이를 인정하기까지 정말 쉽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가슴 깊은 곳에는 커다란 공허함이 남았습니다. “맹목적으로 따라야 했던 의무가 없어졌으니 가슴에 얹혀있던 무거운 바위가 내려간 듯 홀가분했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혼란스러웠죠.” 그렇게 길을 잃은 자이드 형제는 참된 진리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커져가는 공허함 자이드는 어딘가에 진짜 ‘진리’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것을 찾고 싶었고 찾아야만 했습니다. “온라인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소셜 미디어를 통해 연구하고 토론했어요.” 이전에는 온라인 공간을 이슬람을 변호하는 데 사용했다면, 이제는 그 반대편에 서 있었습니다. “목적이 바뀌었죠. 저처럼 사람들이 이슬람을 떠나도록 설득하고 싶었어요. 저와 같은 무신론자들과 이야기하고 싶었고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었죠.” 6개월 동안 탐색한 후, 공허함은 더욱 커졌습니다. “외로웠어요.” 그가 말합니다. “대화할 수 있는 사람도,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사람도 없었으니까요.” 가족에게는 자신의 생각과 고충을 말할 수 없었고,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는 단 한 명뿐이었는데 그 친구마저 늘 곁에 있지는 못했습니다. “그 때는 힘들었어요.” 형제는 기억합니다. “유대교에 대해 조금 읽다가, 기독교에 대해 조금, 그다음엔 무신론에 대해 조금 읽기 시작했습니다. 페이스북, 유튜브, 검색 엔진을 뒤지며… 답을 찾아야 했습니다. 이 커져가는 공허함을 채울 수 있는 무언가를요.” 자이드는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다양한 것들에 손을 댔습니다. “캇(khat, 예멘에서 널리 사용되며 합법적인 경미한 흥분제 마약)을 사용하기 시작했죠.” “점차 나태함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목적의식이 없었어요. 나쁜 말을 쓰고, 나쁜 무리와 어울렸으며, 공허함은 커져만 갔어요. 정신적으로 약해졌어요. 마약을 사용할 뿐만 아니라 밀